여행(旅行)2015/경주 양동마을여행

경주 양동마을여행

녹수청산綠水靑山 2015. 7. 21. 15:38

경주 양동(良洞)(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등재)마을여행

 

양동마을(良洞)

 

경상북도 경주시 외곽에 있는 유서 깊은 양반 마을이다.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전형으로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한 양반가옥과 초가 160호가 집중되어 있다.

마을은 약 520년 전 형성되었다 하는데 현재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가 마을을 계승하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ㅁ자형이 기본형이며,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을 보인다. 마을에는 아직도 유교사상이 짙게 남아 있어 매년 4, 10월에 선조를 제향하는 의식을 마을 공동으로 거행한다.

 

마을은 경주시 중심시가지에서 동북부인 포항 쪽으로 약 16㎞ 떨어진 형산강 중류지점에 있다. 안동하회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전형으로 1984년 12월 24일에 월성양동마을이란 명칭으로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면서 경주양동마을이 되었다. 마을 내에는 보물 3점, 중요민속자료 12점, 도지정유형문화재 4점, 도지정민속자료 1점, 도지정기념물 1점과 문화재자료 1점이 있다.

 

경주에서 흘러드는 형산강이 마을을 서남방향으로 휘둘러 안고 흐르는 형상이다. 마을 서쪽에는 마을의 부를 상징하는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고, 북동쪽에는 비교적 큰 한계저수지가 있다. 마을은 약 520년 전 손씨의 선조인 손소(孫昭)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살던 장인인 풍덕유씨 유복하(柳復河)의 상속자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월성손씨(月城孫氏)의 종가를 지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풍덕유씨의 후손은 절손되어 외손인 손씨문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손씨의 딸은 이 마을의 여강이씨(驪江李氏) 번(蕃)에게 출가하여 조선시대 성리학 정립의 선구적 인물인 이언적(李彦迪)을 낳아 번성하게 되었다. 손씨는 이씨의 외가이면서 상호통혼을 통하여 인척관계를 유지하고 마을 대소사에 협력하여 왔다. 현재 양동마을에는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가 남아 양대 문벌을 이루는 동족집단 마을을 계승하고 있으며, 월성손씨의 종손인 손동만(孫東滿)은 손소의 19대손이고, 여강이씨의 종손인 이인식은 이언적의 15대손이다. 주요문화재로는 무첨당(보물 제411호)·관가정(보물 제442호)·향단(보물 제412호)·양동강학당(중요민속자료 제83호)·양동낙선당(중요민속자료 제73호)·양동수운정(중요민속자료 제80호)·양동수졸당(중요민속자료 제78호)·양동심수정(중요민속자료 제81호)·양동안락정(중요민속자료 제82호)·양동이동기가옥(중요민속자료 제76호)·양동이원봉가옥(중요민속자료 제74호)·양동이원용가옥(중요민속자료 제75호)·양동이향정(중요민속자료 제79호)·양동이희태가옥(중요민속자료 제77호)·경주손동만씨가옥(중요민속자료 제23호) 등이 있다. 그밖에 문화재로는 손소선생분재기(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호)·적기공신논상녹권(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호)·양동대성헌(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4호)·양동의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손종로정충비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등이 있다.

 

마을의 가옥은 ㅁ자형이 기본형이며,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을 보이고 있다. 주택의 규모는 대체로 50평 내외이고, 방은 10개 내외이다. 강동면의 양동마을은 조선 오백년의 양반문화와 현대문화가 함께하는 지역으로 8·15해방 직후까지도 양반집마다 한집에 평균 한집반씩 노비집이 딸려 있어 가랍집·하배집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모두 밭이 되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아직도 유교사상이 짙게 남아 있어 매년 4, 10월에 선조를 제향하는 의식을 마을 공동으로 거행하고 있다.

 

양동(良洞)마을                                                      (언제 : 2015.07.19일 일요일오후 흐림)

 

 

 

 

양동마을 탐방코스

 

- 1코스(하촌) :안락정→이향정→강학당→심수정(20분 소요)

 

- 2코스(물봉골) :무첨당→대성헌→물봉고개→물봉동산→영귀정→설천정사(1시간 소요)

 

- 3코스(수졸당) :경산서당→육위정→내곡동산→수졸당→양졸정(30분 소요)

 

- 4코스(내곡) :근암고택→상춘헌→사호당→서백당→낙선당→창은정사→내곡정(1시간 소요)

 

- 5코스(두곡) :두곡고택→영당→동호정(30분 소요)

 

- 6코스(향단) :정충비각→향단→관가정→수운정(1시간 소요)

 

 

양동마을입구

 

양동마을 관람 매표소

 

 

 

 

 

백년초꽃

 

 

 

 

 

 

 

 

 

 

 

 

 

 

양동 서백당

 

위치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75-6

지정 (지정일) 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1970년 12월 29일 지정)

이 가옥은 경주 손씨 대종가인 양민공 손소(1433∼1484)가 건립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1463~1529)과, 그의 외손이며 동방십팔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이언적(1491~1553)이 태어난 곳이라 한다. 일자형의 대문채는 안에 ㄱ자형의 안채가 있고, 사랑 후원 뒤쪽 높은 곳에는 신문과 사당이 배치되었다. 종가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실이며, 사랑대청에서 바라보이는 후원의 경치 또한 가경이다. 이 집의 당호는 송청 또는 서백당이라 하며, 과거에는 이 가실(家屋)의 주위에 외거하인(外居下人)들이 거처하던 가랍집이 있었다 한다. 정원에는 그 당시에 심은 향나무가 있어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연혁(유래)

이 가옥은 월성 손씨 종택으로 양민공 손소가 지은 것이다.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1463∼1529)과 그의 외손이자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다. 서백당 혹은 송첨이라고도 불리운다. 'ㅡ'자형의 대문채 안에 'ㅁ'자형의 안채가 있는데 대청 6칸, 안방 3칸, 부엌 2칸이다. 아래채의 중심칸이 안대문이고 그 왼쪽은 2칸마루 고방이며, 오른쪽은 큰사랑방과 사랑대청이다. 높은 돌기단 위에 있는 사랑대청은 마루 둘레에 난간을 돌린 누마루이다. 사랑대청 옆 정원쪽으로 짤막한 상징적 담장이 있으며, 정원 위쪽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 초기 양반집의 일반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종가(宗家)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큰 가옥이며, 사랑 마당에 있는 향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백당(書百堂)

 

 

양동의향나무 (良洞─香─)

 

성격 식물, 나무, 향나무

유형 동식물

지정 (지정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 (1974년 12월 10일)

서식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23

분야 과학/식물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향나무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 높이가 약 9m, 가슴높이의 둘레가 2.92m이고, 수관폭(樹冠幅)이 약 12m에 달하는 노거수(老巨樹)이다. 나무의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는 원줄기는 지상 90㎝ 높이에서 동, 남, 북의 3방향으로 가지를 낸 뒤에 다시 꾸불꾸불 위로 자라서 세 가지를 내고 있으며 동으로 5m, 서로 7m, 남으로 6m, 북으로 6.4m로 널리 퍼져 수세(樹勢)가 왕성하여 마치 분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나무는 남부의 동해안과 울릉도에서만 자생하고 있을 뿐 그 밖의 지역의 것은 전부 인공적으로 심은 것들이다. 이 나무도 손소(孫昭)가 1457년(세조 2) 양동마을에 입향하여 종가집인 송첨(松詹)을 창건할 때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이 나무는 경상북도에 있는 향나무 중에서 6위로 큰 것이나 나무를 심은 사람과 그 연대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중요민속자료 제23호인 손동만(孫東滿)의 집 뜰에서 잘 보호되고 있어 기념물로 지정받게 되었다.

 

서백당의향나무 

 

 

 

 

 

땅달맞이꽃

 

범부채꽃

 

맥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