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旅行)2009/영월장릉과청 령 포

영월장릉과청령포

녹수청산綠水靑山 2009. 11. 29. 11:38

영월장릉과 청령포

   단종의 얼이 살아숨쉬는곳 영월의 장릉과 청령포를 구38번

국도를 따라 소나기재(옛고개길)홍살문과 장릉,왕방연시조비, 

청령포를 탐방하고 왔다.. 

장릉입구 소나기재, 홍살문                 (탐방일 ; 2009.11.28일토요일)

 홍 살 문

소나기재홍살문개요

 소나기재 표지석 (옛고개길)

 소나기재에대한개요

 장릉 단종역사관

장릉은 조선제6대임금인 단종의능으로 숫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의자리를 빼았기고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이 17세되던 해에 죽임을 당하여 그 죽엄이 동강에 버려졌으나 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수습하여 현재의 능이 있는 곳에 암장하였다.

역사상 가장슬프고도 에환이 많은 단종대왕의 능은 다른 능에비해 많이 다르다..

 단종대왕릉

 

 정자각( 한삭날인 단종 제향때  제물을 몰리는곳 으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 이라한다)

 

 영천(우물)

 

 

 

 

 정자각의개요

 정자각

 

 단종비각

 

 

 

 수복실( 능지기가거처하던곳)

 

 배단식(단종을위하여목슴을바친충신을추모하기위하여 만든재단)

 장판옥은 27대임금중 유일하게 장릉능에만 있다.

 장판옥 장판옥(단종을 위하여 목슴을바친 충신위32인,조사위186인,

환자군노44인,여인위 6인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곳이다)

 

 

 

 

 

 

 

 

 

 

 

 

 

 

 엄홍도의 여정각

 

 

 

 

 

박충원 낙촌비각 

 

 

 

 

 

 왕방연의 시조비

  1457년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은 세조의 명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가지고 온 인물로

형(形)을 집행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시(詩)를 남겼다.

1617년 병조참의 용계김지남(김지남)이 영월 순시때 아이들이 노랫가락에 맞춰 부르는 것을 듣고

한시로 지어 후세에 남겼다.

千里遠遠道   美人離別秋

此心無所着   下馬臨川流

流川赤如我   鳴咽去不休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 놋다

 청령포에 오시는 관광객이 이곳 왕방연시조비있는 곳을 모르고 청령포유배지

만 탐방하고 가시는 관광객이 많으신것같은데 이곳도 한번들려서 보고가시는

것도 좋을것 같다..

 

 왕방연시조비

 

 

千里遠遠道   美人離別秋

此心無所着   下馬臨川流

流川赤如我   鳴咽去不休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 놋다

 

 

 

 

 소나무가지가 유배지쪽으로 향하여 있다..

 

 

 두견새우는 청령포노래비

 두견새우는 청령포 노래가사

 

 선착장

 

 

 

 

 

 

 단종어소내 행랑채

 

 

 

 

 

 

 

 단종의어소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이곳은 단종대왕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유배되어  계셨던곳으로 당시이곳에 어소가 있었으나소실되고 영조 39년에 이비를 새워 어소위치를 전하고 있다

 

 이 관음송은 높이 30m , 둘레5m, 지상2m높이에서 두가지로 갈라졌고  단종이

갈라진나무가지사이에 않아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느며 600년정도되

었다고한다.

 

 

 

 

 망향탑 단종이 이곳유배지에서생활하며 이곳에 올라 한양땅를 그리며 쌓았다

고한다.

 

 

 노산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여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빚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므로 노산대라  부르고있다.

 서강

 노산대에서본 망향탑과 전망대

 노산대

 

 송림사이로보이는 단종어소

 

 

 청령포 선창장에서바리보이는 왕방연시조비 있는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