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고성산성
38번국도를따라가다보면정선군 신동읍 예미가 나온다. 예미4거리신호등을받아(제천방면에서 태백방면은
좌회전, 태백에서 제천방면우회전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작은터널(고성터널 :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
전국 유일의 최고로 작고좁은 터널길이 600m) 나온다 .
겨울에는 눈이녹지않아 고개를넘기힘들기 때문에 예전 신동읍 사람들이동강물을 먹기위해 공사를 하면서
뚫어 놓은 터널을 지나야 한다
고성터널(길이600m)
터널은 직선으로 600여미터가 되며 봉고차 한 대가겨우 빠져나갈 정도밖에되지않아마주오는차를 피하기
위해서는 차량의 라이트로 신호를 하여 한 대씩 빠져나가야 한다.
승용차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고성터널입니다.
원래의 목적은 상수도 도수터널로 만들어졌기에 차량통행은 매우 위험하다.
이 터널 왼쪽으로 산정상을 돌아가는 우회도로가 잘 단장되었습니다.
정선군에 따르면 신동읍 주민들은 생태계보전지역인 동강가는 길 (군도6호선)이 교통사고 위험지역으로
방치되고 있다며 고성터널 개설을 요구하고 있다. 고성1,2리 운치1, 2,3리 덕천리 등 동강 주변 530여명의
주민들은 해마다 11월부터 3월말까지의 동절기에는폭설 과 잦은 결빙때문에이에 따라주민들은 예미2리
~고성1리 고성재 구간의 차량통행을 위해 고성터널을 개설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곳을지나계속가다보면고성리보건소와 정선동강안내소가 있고 안내소를조금지나면 연포리와거북마을
로가는좁은도로와백운산과정선으로가는도로를 따라가다보면왼쪽으로작은다리를건너고성산과고성초등
학교가 보인다.
작은정자와 돌탑을 따라올라가면 고성산성 탐방로란표지판이나오고 돌계단을 따라조금오르면 제1산성-
제2산성-제3산성안쪽으로 성화봉성대로보이는자리가있고이곳은지나면제4산성을 끝으로 탐방을 마친다.
고성리산성입구 (탐방일: 2010.04.16일금요일)
유래 및 현황
이 산성은 신동읍 고성2리 고방부락 북서쪽 해발 425m 산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서북쪽으로 는
남한강의 지류인 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성의 형태는 대체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특이한 것은 성곽을 전면 연결하지 않고 석축 4개소와 그
사이의 토축으로 나누어 쌓았다. 본래 구간구간별로 나누어서 축조한 것인지, 선후 관계가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복원은남아있는석축을기준으로 4지점의석축이동서남북뱡향으로나누어져이루어졌다.
2004년강원문화재연구소의부분적발굴조사가이루어졌는데적어도조사구역내에는토루가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석축이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산성 내의 시설물로는 집수시설 1개소, 추정 문지 1개소, 추정 건물지 1동 등이 조사되었다.
그리고 강자갈돌로 된 호박돌 무지가 조사되었는데,이 돌무지는석축및토루의내벽보강시설이나방어용인
하란석(河卵石)으로 추정되었다.
출토유물은토기류는회청색경질과적갈색연질의호형토기편, 타날문토기편, 대각편,개편, 파상집선문이나
점반원문이 시문된 토기편 등이며, 기와류는 점토띠흔이 확인되는 고식의 평기와로 두께가 매우 얇다.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편으로만 출토되어그 시기를 명확히알기는 어렵지만 개편과대각편, 점반원문이
시문된 토기편, 고식 기와류로 가늠해 볼 때 대략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것으로 생각된다.
발굴조사 결과, 강원지방에서 지금까지 확인된가장오래된 성곽 유적으로 토루와 석축의축조와 관련하여
성곽 발달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문화재지정후붕괴부분에 대하여1997년부터 2000년도에이르기까지모두다섯번에걸쳐지속적으로 정비를
추진하여 일부 붕괴된 성벽을 제외하고는 외형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제1산성외곽
제1산성내벽( 앞에보이는산이 평창과 정선백운산)
제3산성 위로 투척용 일반돌이쌓여있다..
봉송대 터 (자리)
고성산성탐방을마치고시간여유가있어서4km에있는선생김봉두촬영지인연포리와거북마을을다녀왔다.
산성탐방을마치고 연포리로가는 도로가 차한대지나갈정도로 좁고 고불고불 첩첩산간오지마을이다.
덕천리에서 연포리와 거북마을로가는 다리
연포리로가는길 덕천리마을 을지나야한다..
재두루미
연포마을
선생김봉두촬영지연포초교( 지금은 폐교가되고 동강생태체헌장으로사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