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고려궁지
조선 숙종 37년 성을 개축·완성할 당시 북문에는누각이없었으나 정조 7년에 강화 유수 김노진이누각을세우고진송루라고 했다. 그뒤전쟁으로헐린북문누각은1976년강화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강화산성북문 진송루 (여행일:2010.11.07일일요일나홀로)
고 려 궁 지
종 목 사적 제133호
지 정 일 1964.06.10
소 재 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743-1
시 대 고려시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의해 거의 불타없어져 지금은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정문 승평문